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렐라 프레니 (문단 편집) == [[니콜라이 갸우로프]]와의 재혼 == 프레니는 사생활에선 큰 스캔들은 없었으나, 재혼은 했다. 1977년[* 어느 매체에서는 1978년이나 1979년에 이혼했다는 기록도 있다.]지휘자 레오니 마제라와 이혼하고, [[불가리아]]의 [[베이스]] [[니콜라이 갸우로프]]와 재혼한 것은 프레니를 거론할때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. 더군데나, 두 사람은 기혼자의 몸으로 만났다고 한다.(...)[* 갸우로프의 전부인은 피아니스트 겸 반주자 였다.] 재혼했지만 주위에선 큰 스캔들로 보지 않았던듯. 당시 프레니의 친딸 미카엘라가 이미 성인이 되었을때라서 언론에 큰 가십거리로 잡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. ~~다행이다. [[파바로티|동갑내기 누구]]처럼 되지는 않아서...~~ [[파일:/img/img_link7/816/815688_1.jpg]] '''갸우로프와 프레니 부부''' 프레니는 갸우로프를 1965년에 만났는데, 당시 둘이 EMI에서 오토 클램페러의 지휘로 이뤄진 [[돈 조반니]] 녹음을 했을때였다. 그 뒤로 둘은 레코드사와 오페라 무대에서 같이 출연하기도 했고[* 프레니와 갸우로프가 같이 나온것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[[라 보엠]], [[시몬 보카네그라]], [[돈 카를로스(베르디 오페라)|돈 카를로]], [[에르나니]], [[예브게니 오네긴]], [[스페이드의 여왕]]이다. 이 중 [[라 보엠]]과 [[돈 카를로스(베르디 오페라)|돈 카를로]], [[시몬 보카네그라]]는 녹음도 같이했다.], 그 와중에 사랑에 빠져 결국 1979년에 들어서 재혼하게 되었으니 프레니가 마제라와 이혼한지 2년만이다. 갸우로프와 재혼한 프레니는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[[러시아]] [[오페라]]에도 관심을 보였다. 두 번째 남편 갸우로프가 러시아 오페라에서 많이 참여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었다. 프레니의 첫 러시아 오페라는 [[예브게니 오네긴]]의 타티아나. 프레니가 타티아나역을 처음 맡은것은 1988년 세이지 오자와의 지휘로 이뤄진 빈 국립 가극장 [[오네긴]] 공연에서 였고, 당시 [[이탈리아]] [[소프라노]]가 러시아 오페라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꽤 화제가 되기도 했다. 그것도 이탈리아 번역 가사로 부른것이 아닌, 러시아 원어로 불렀다는 점에서였다.[* 이탈리아 소프라노 중에서 타티아나역을 맡은 사람은 [[미렐라 프레니]]와 [[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]]와 함께 [[필립스]] [[오네긴]] 전곡반에 참여했던 누치아 포칠레가 유일하다. 그 전에 [[레나타 테발디]]가 오네긴 공연에서 타티아나역을 맡은 적이 있지만, 이쪽은 이탈리아 번역가사로 불렀기에 예외로 쳐두는 경우가 많다.] [[파일:/img/img_link7/816/815778_1.jpg]] '''1988년 빈 국립 가극장에서 열린 [[예브게니 오네긴]] 공연에 출연한 프레니와 갸우로프'''[* 저 당시 프레니는 타티아나를, 갸우로프는 그레민 공을 연기했었다.] [youtube(fMv07i_PrCg)] [youtube(kC7yu9WnA-8)] '''1988년 빈 국립 가극장에서 열린 [[오네긴]] 공연에서 러브레터 아리아를 부르는 타티아나역의 미렐라 프레니''' 결과는 대성공이었고, 1989년에는 [[도이치 그라모폰]]에서 [[오네긴]] 전곡반도 녹음도 하게 되었으며[* 이 오네긴 전곡반은 [[제임스 러바인]](James Levine)이 지휘한 것으로 나오기전에 프레니가 타티아나를 노래한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, 그 결과는 신통치 않은 음반으로 알려져있다. 프레니의 타티아나는 괜찮은데, 러바인의 지휘와 토마스 알렌의 오네긴이 [[차도남]]이 아닌 다 죽어가는 할아버지 같은 음색을 들려주기에 전체적 평가는 '''"영 아니올시다."'''라는 평이 상당수. 결론은 프레니만 불쌍하기로도 유명한 [[오네긴]] 음반이다. [[지못미]] 프레니(...)], 이후 프레니는 더욱 러시아 오페라에 관심을 보이게되고, [[차이콥스키]]의 [[스페이드의 여왕]], 프로코키예프의 [[전쟁과 평화]] 중 나타샤역도 맡게되었다.[* [[스페이드의 여왕]] 역시 프레니가 RCA에서 녹음도 했다. 지휘는 세이지 오자와. 덧붙이자면, 당시 신예였던 [[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]]의 예레츠키를 들을 수 있는 음반이기도 하다.] 갸우로프와의 재혼은 프레니가 전남편 레오니 마제라랑 같이 살았을때만큼 음악적 영향은 많이 받진 못했지만, 대신 러시아 오페라를 자신의 또다른 레퍼토리로 적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선 커다란 의미가 있다. [[파일:/img/img_link7/822/821237_1.jpg]] '''[[스페이드의 여왕]] 중 리자역의 미렐라 프레니와 게르만 장교로 분한 블라디미르 알틀란토프''' 이후 두 사람은 러시아 오페라 뿐만 아니라 콘서트에도 함께 출연했고, 별탈없이 부부로써 금실좋게 지냈으며, 갸우로프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내의 고향 모데나에서 함께 살았던것으로 전해진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